[인터뷰]창작집단 3355를 만나다

정의롭지 않아도 괜찮아

취재·글 이하나 allmyto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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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온 연대

주류언론에는 노출되지 않지만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특정한 분야가 있다.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과 뉴타운으로 국가 전체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부동산 경기는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과 더불어 어떻게든 부동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겉으로 보기엔 건물주와 세입자와의 대결이 주를 이룬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낯선 말이 나타났다.

Gentrification은 gentrify에서 파생된 명사다. 주택가의 고급 주택화, (지역, 사람 등을) 고급으로 [품위 있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영어사전에는 이 낱말이 주로 수동태로 쓰인다고 명시되어 있다. “고급”의 정의를 꼼꼼히 따져되묻고 싶다. 고급으로 바뀐다는 건 그 이전엔 고급스럽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주택 고급화가 아니라 주택가격의 고가화, 정도가 적절한 뜻이리라. 고급과 고가는 동의어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문제로 처음 등장한 것은 홍대인근이다. 잘 알려진 대로 홍익대학교 주변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독특한 지역문화를 만들었다. 그 틈을 타고 자본과 사업이 진출했다. 돈이 흘러들어온 골목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더 많은 돈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골목을 떠났다. 이후 수많은 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다.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는 점점 늘어났고 적자를 감수하면서 버티던 자영업자들은 많은 것을 잃고 밀려났다.

하늘 아래 건물주있다는 말이 떠돈다. 건물주의 권력은 세입자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고 월세를 올릴 수 있고 아무 때나 임대를 취소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적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새로운 대책과 사회적 담론이 필요해졌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단순한 까페가 아닌 문화공간을 표방한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은 가수 싸이(본명:박재상)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건물을 매입했고, 이후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계약문제로 명도소송을 벌였다. 건물주측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내보내고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려했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임대료 협상 등의 제안조차 받아본 적 없어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그간 여타 젠트리피케이션의 쟁점에 있던 세입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 문화제를 열고 영상상영을 하며 이 상황을 기록해 시민들과 공유한다. 토론회를 열어 젠트리피케이션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되새기고 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저항엔 여러 문화단체가 연대했다. 이것은 단지 한 세입자가 쫓겨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현상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 중 창작집단3355라는 문화단체가 있다. 창작집단3355가 이 연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아니며,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창작집단3355의 연대는 어딘가 그 결이 달라보였다. 그들에게 숨은 저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 멤버 중 한 사람인 김문경씨를 만났다. 이 기록은 김문경씨가 소개한 창작집단3355의 철학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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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들과 함께 한 예술프로젝트 “지구인갤러리” 서울이주민예술제에서 예술제사무국, 영화프로그램팀, 연극 기획 및 극작, 공동체미술을 연출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창작집단3555의 느슨한 연대가 갖는 힘

창작집단3355의 멤버는 열 명 정도다. 문학, 미술, 영화, 디자인,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모였다. 예술가들이 모여 같은 생각을 품었지만 그 결속의 강도는 느슨한 편이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 당시의 상황에 따라 뭉쳤다 흩어진다. 창작집단3355가 함께 하는 활동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개인에게 생활을 포기하고 단체에 집중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창작집단3555(이하 3355)은 강요하지 않는 것, 느슨한 공동체를 표방한다.

각 멤버는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일을 하다가 함께 할 일이 있을 때 모인다. 그렇다고 늘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소통한다. 거대한 담론을 되새기기보다 평범한 일상에 계속해서 질문한다. 3355가 기본적으로 지키는 것은 ‘왜, 어떻게 해서,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이다.

3355는 각자 개인작업을 하면서도 지역문화예술운동을 꿈꾸는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젊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가 뺀다. 굳이 연령대를 언급하여 특정화시키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서다. 3355는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되 연대에 의의를 둔다. 지역문화예술운동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지 않나 고민한다. 80년대 민중예술을 하던 선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과 시대가 변했으니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리라.

3355가 생각하는 지역문화예술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수퍼집 아저씨와 쌀집 아저씨가 같이 창작집단의 작품을 보는 것이 지역문화예술운동이다. 일상에서 파고들 수 있는 것을 추구하되 지역과 공유하고 공존과 자립을 꿈꾼다. 3355는 영상작품 공동체 상영을 자주 해왔다. 같이 영상을 본 이웃주민이 음악회도 한 번 해봐, 라고 권했을 때, 그것이 바로 지역문화예술운동이 주민들과 공감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음악회를 권유한 주민은 세 명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다. 크고 화려한 무대를 꿈꾸지 않는다. 장비와 장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각자 간식을 가져오고 예산이 가능한 만큼 준비한다. 작은 자리를 추구한다고 해서 대기업이나 자본을 거세게 비판하고 싶지 않다. 3355가 추구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각계각층, 너른 분야에서 소수의 사람이라도 누리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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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상영모습 철거현장 및 강제집행현장│사진제공 창작집단3355

3355가 대안상영네트워크와 함께 3355영화제를 진행한 것은 2012년부터이다. 서대문 기반으로 활동하여 첫 상영은 인터뷰장소이기도 했던 레드북스에서 시작했다. 멀티플렉스도 있고 작은 상영관도 있는 세상, 문화가 획일화되고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고자 한다. 3355영화제는 공간과 소수의 관객만 있으면 된다. 대체적으로 관객은 20여명 남짓이고, 마을의 공유공간에서 주로 상영했다. 2012년과 2013년은 멤버들끼리 각자 추렴하여 영상제작자에게 영상상영비용을 지급했고, 2014년과 2015년은 각각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금 100만원을 받아 2014년에 8회, 2015년에 5회를 상영하는데 썼다. 상영한 장면은 영상으로 기록하여 유투브에 올려둔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3355영화제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추억이 있었다는 기억 한 자락이면 충분히 뿌듯하다.

영화제는 철저하게 영상을 같이 볼 사람들에게 맞춘다. 상영공간의 장소성을 파악해 공간이 갖는 의미와 자주 모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걸맞은 영상을 준비한다. 사소한 고민을 깊이 하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이 오고 어떤 관계를 그 장소에서 맺는지에 대해 의논한다. 돈 문제로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은 형편 닿는 대로 명확하게 협의를 거치기 때문이다. 예산이 적을 때는 적은 대로, 많을 때는 많은 대로, 서로 불편할까봐 대화를 미루지 않고 정확하게 협의를 거치면 돈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이 없었다. 서로 기대가 어긋나 실망하지 않도록 사전협의를 명확하게 거치는 것이다. 3355가 영화제에 소요되는 비용을 매번 다르게 협의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찰제가 아닌 형편껏의 개념은 3355가 지향하는 연대의 속성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정의롭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친구가 되어줄 뿐.

 

3355는 영화제를 준비하고 연대작업을 같이 하다 보니 대의명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과연 우리는 왜 저들과 연대하는가. 그들과 우리를 분리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연대하는 사람들과 투쟁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담감이 있다. 연대하는 소수자와 약자는 늘 정의로워야 하는지 질문했다.

3355가 내린 결론은 정의롭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 투쟁당사자,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들이 정의롭고 가해자, 건물주는 악의적이라 약자를 돕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약하기 때문이다. 3355는 그저 같이 약한 사람들이며 언제든지 자본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런 걸 물었어요. 그래서 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며 뭘 바라느냐고. 그러니까 그 질문은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이기고 진다는 건 이미 자본의 프레임 아닌가요? 이기고 싶지도 지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 건 나중에 도출될 결과일 뿐이죠. 당신이 정의로워서 돕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도 약자, 나도 약자기 때문에 당신이 부당한 일일 당하고 있기 때문에 같이 화를 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이 또 누군가를 착취하면 저는 당신에게 화를 낼 거라고. 그렇지만 약자인 사람이 정의롭고 완전무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죠. 자본이 없어서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싸우고 있는데, 그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지, 우리는 그들이 혼자가 되는 게 싫기 때문이에요. 대의명분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민주화운동시절에는 대의명분으로 많은 선배들이 싸웠다.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 선명했던 적이 사라졌고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찾기가 중요할 뿐이다. 큰 목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 것이 3355의 시각이며 이는 3355 또래집단도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권리찾기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이에 관해서 정의가 필수적으로 따라붙지 않아도 된다. 그저 억울한 일을 되도록 겪지 않도록 함께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이동권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이동권투쟁이 싸워 나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간의 결과로 저상버스가 도입되었고 많은 교통약자들이 혜택을 입었다. 피해자라서, 정의로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권리찾기에 나선다면 그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커서 여러 곳으로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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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5영화제 출품작3355영화제는 대안상영회로 찾아가고 움직이는 소규모 공동체 상영을 한다. 그동안 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 / 에너지기후정의센터/유진상가/신촌민회/얼티즌허브/거북골사랑방/가재울문화사랑방/까페 아디스아바바/홍은예술창작센터/체화당/까페 여름/대안학교 꽃피는 학교/북아현 재개발 지역 철거현장/포방터 시장 골목/지역케이블 노동자 농성장 을 찾았다.

3355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연대하는 일들이 대상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합일점을 찾아낸다. 3355가 홈페이지도 없고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난도 들었다. 현장에서 영상을 찍어놓고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삭제요청이 들어오면 삭제하기도 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연대하는 일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나 그것이 공익을 위한 기록이 될 것인지 저항과 연대를 소재로 삼아 대상화하지 않나 우려한다. 멤버들은 기록을 공개하는 공동의 작업뿐 아니라 개인의 작업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눈다. 수년간의 의사소통과 서로간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투쟁을 재료로 쓰지 않고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건 운동이나 대의명분보다 사람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슈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여 생활이 곤란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는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 개인의 삶이 이슈에 묻혀 어긋나지 않도록 3355는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긴다.

“좀 더 자극적인 걸 내세우면 주목을 받기 쉽죠. 자극적인 소재가 세상에 나가면 오해를 받기 쉬워져요. 이슈가 된 다음에도, 그 일이 잊혀진 다음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잖아요.”

개인의 일상이 천천히 이어지고 누구도 앞장서서 희생타가 되지 않아야 한다. 지속적인 연대의 힘은 서로 행복할 때 생겨난다.

“‘너희 먹고 살만 하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저게 무슨 말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먹고 살만 하다는 건 밥 세끼 먹으면 된다는 얘기인가?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니지 않으면 되는 건가? 하고요. 괜찮은 거 같아요. 궁핍해보이거나 곤궁해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건 제가 여유 있어 보인다는 얘기로 해석하기로 했어요. 좀 더 예쁘고 좀 더 감각적으로 보이면 좋아 보이겠죠. 그러면 연대와 저항이 투쟁, 이라는 단어에 가로막혀 무섭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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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사진제공/창작집단3355

정치적 이견과 당파성을 떠나, 계급을 떠나 세상의 모든 차별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되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3355의 다짐은 소박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 어떤 활동가가 “느슨한 삶의 연대”가 곳곳에 뿌리내리는 삶이 이어지길 바란다는 말을 한 게 기억났다. 자본의 수혜를 받고 자란 사람들은 유야무야 침식당한 자신의 삶 어디에 자본이 뿌리 내린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더 많은 자본이 없어 억울한 일이 생기고 권리를 침해당할 때 눈앞에 보이는 나의 적은 실체가 아닐 수 있다. 지금의 2-30대 청년층은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장 싸워야 할 것은 일상이었고 매일의 밥이었다. 더 먼 미래를 준비하기에 기본적인 것을 일단 해결해야 했다. 아직도 청년층은 매일의 밥을 위해 싸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공존과 자립이다. 세상이 모두 평화로울 날은 없겠지만 적어도 억울한 일이 생기면 친구가 되어주자는 3355의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헤매던 길의 안개가 걷힌 기분이랄까.

“네가 정의롭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나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으면 좋겠어.”

대안을 제시하고 오랫동안 함께 저항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거창한 구호, 유창한 철학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저 함께 비를 맞는 일. 정답은 없다고 겸허하게 내려놓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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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집단3355의 멤버, 문문

https://www.youtube.com/channel/UCcLi933SZXvxMiOzAnhzU6w

유투브 위 링크로 들어가면 창작집단3355의 영상작업물을 볼 수 있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전인 2월 17일 “소송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싸이의 법정대리인(변호사) 정경석씨가 사임계를 내고 드로잉 운영진과 권준호, 신제현 작가에게 제기한 3건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항소도 취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앞으로도 창작집단삼삼오오를 비롯, 대안을 꿈꾸는 여러 단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취재하여 공유할 예정입니다.

※소송문학은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에서 싸이의 법정대리인이 작성한 소장이 가히 문학적 범주에 접근할만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승인 2016.03.05  01:40:15  |  조회수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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